독자칼럼 / “낳아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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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과 5학년짜리 아들을 둔 엄마다.
자그마한 주택에 전세로 살고 있고, 소형차를 할부로 사서 6년째 소유하고 있고,
맞벌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각각 한 학원에 보내고 있다.
아이들보다 먼저 귀가해 현관문을 열어주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 하는 나와 비슷한 엄마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속으로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다짐하면서 지낸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커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할 때 주려고 아이들 몰래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복대,
그리고 아이들이 1년 동안 어떻게 자랐는지 적어 놓은 낡은 노트 한 권이다.


나는 아이들의 학교에 잘 가지 못한다. 때로는 시간이 안돼서, 때로는 쑥스러워서, 때로는 ‘치맛바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학교에 가지 못한다.
그 대신, 학기초가 되면 담임선생님께 아이의 성격이나 집에서의 태도나 버릇을 적은 편지를 보내고,
학기말에는 1년 동안의 가르침에 감사드리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1년에 딱 한번은 당당하게 학교에 간다. 그날은 바로 아이들 생일날이다.
아이의 나이만큼 빨간 장미꽃을 사들고, 반 아이들에게 줄 100원짜리 빨대사탕 40개를 들고 학교에 찾아간다.
교실 밖에서 아이 몰래 선생님께 살짝 전해주고 돌아오는 일을 6년째 하고 있다.
그러면 아이는 집에서 생일잔치를 거창하게 해주지 않아도 그보다 몇갑절 감동을 받는 모양이다.
선생님을 통해 받는 축하의 꽃다발 덕분에.
올해도 어김없이 며칠 전에 내 임무를 완수했다. 그날 저녁 딸아이는 내게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라고 속삭여주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말만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 나는 “낳아줘서 고마워”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배웠다.
엄마가 얼마나 가슴 뭉클했는지는, 훗날 딸아이가 결혼을 해서 낳은 딸이 그 말을 해줄 때 비로소 알 것이다.
나는 왜 바보같이 이토록 아름다운 말을 몰랐을까? 빨리 일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우리 엄마에게 더 늦기 전에 내 딸에게서 배운 말을 해드려야겠다.



이미경/간호사, [한 겨 레] 2002-12-30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12면 01판 112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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