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길섶에서] 배냇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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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 입시 풍속도 달라지기 마련.
올해는 태풍 ‘루사’에도 떨어지지 않은 ‘축 합격’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붉은 사과가 최고 인기품이었다고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학생들이 사용하던 방석이 남학생들에게 인기라는 얘기가 들리던데,
이도 벌써 고전(古典)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30여년전에는 지금의 수능격인 예비고사와 대학 본고사를 거푸 치러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때 부적을 붙이고 시험을 치르던 친구들의 기억이 새롭다.

내가 배냇저고리를 본 것은 대학 본고사날 새벽.
대학 근처의 허름한 여관에 어머니와 둘이 묵었는데, 어머니는 이른 새벽 검정색 교복 안에다 ‘손바닥만한’ 이상한 옷을 누비고 계셨다.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도포 속에 꿰매고 가면 장원 급제했단다.”
배냇저고리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맨먼저 몸을 감싸안는 깃저고리. 새 생명의 세상과 첫 접촉인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희구와 소원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일까.
수능성적 때문에 자살한 한 어린 여학생의 기사를 읽고 우리 시대의 배냇저고리를 생각한다.



양승현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2-11-09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07면 05판 52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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